부끄럽지 않은 자위 이야기



 

<닥터 봉>. 꽤 오래된 한국 영화인데, 몇몇 장면은 눈앞에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한다. 여주인공이 마트에서 오이를 사는데, 남자가 다가와 처녀가 오이를 사서 뭐하냐며 깐죽대는 장면이 있다. 관객의 웃음을 노린 장치일 터인데 비디오방에서 처음 이 장면을 접한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찔려서. 오이, 당근, 진동칫솔… 모두 남들과는 다른 이미지가 있다. 내겐. 내가 자위를 하고, 자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한 점 부끄럼이 없지만, 남이 불편한 것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뭐하시는 분이세요?”

“섹스 칼럼을 씁니다.”

 

내 대답에 이미 불편함을 느끼는 상대를 앞에 두고 “자위에 대한 글도 씁니다.” 하고 일부러 못되게 굴지는 않는다. 자위는 평균 연령대가 마흔인 모임에서도 선뜻 내뱉기 힘든, ‘볼드모트’ 같은 존재니까.

 

언제부터 자위를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도구를 쓴 것은 중학생 때부터였다. 사실 자위를 하고 싶어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6명의 식구가 한 집에 살다 보니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잠깐의 시간이 허락해도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다. 방문을 잠그고, 창문의 커튼을 제대로 쳤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기. 적당한 크기의 손거울이 없어 로션 바를 때 보는 커다란 벽거울을 낑낑 대며 끌고 오는 동안 이미 심신은 너덜너덜해진다. 하지만 그 모든 부산함과 가슴 졸임도 거울로 나의 성기를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아아, 도색 잡지의 도움 없이도 뇌가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한다.

 

침대에 편안히 누워 손가락 한 두어 개로 클리토리스를 주변부부터 시작, 만지작거린다. 마스터베이션을 풍요롭게 하는 건 판타지다. 판타지와 더불어 은밀한 아래쪽 깊숙한 곳을 더듬으면 이미 오른손은 내 손이 아니다. 추운 겨울, 북풍에 덜덜 떨면서도 체육관 앞에서 오매불망 언제 나올까 기다리게 만드는 배구부 오빠, 아니면 화려한 무대 위에서 마이 걸을 외치며 열창하는 팝스타의 손이다.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지치지 않고 섹스를 할 수 있다. 이런저런 남자들의 우울한 사정-조루, 너무 작은 성기, 콘돔도 못 사는 가난뱅이 등등-을 굳이 눈감아 주지 않아도 끝까지 만족스러운 섹스 행위는, 그래서 마스터베이션뿐이다.

 

남자들이 페니스를 잡을 때 각자 알맞은 그립감의 기준이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나름의 마스터베이션 룰이 있다. 성감대로부터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다. 당장 5분 뒤에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여유를 두고 성감대를 공략한다. 손가락을 피부 위를 지그시 누르면서 원을 그리듯 움직인다.

내 경우 눕지 않고 앉아 있을 때는 반드시 오른쪽 허벅지가 왼쪽 허벅지 위를 눌러야 한다. 아마도 내가 오른손잡이라 그런 걸까? 힘을 싣는 게 오른쪽이 편하다. 오롯이 나의 기쁨을 위해 하는 행위인 만큼 되도록 딴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남자와 뒹굴 때는 솔직히 말해 자주 딴생각을 하는 편이다. 공기가 차가우니 히터를 더 올릴까, 내가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빨리 사정하지 않을까 등등 잠자리에서 배려의 여신인 양 행동하는, 어색한 ‘나’가 있다. 반면 자위는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행동할수록 즐거운 행위다.

 

어른은 죄다 위선자로 보이던 사춘기에 자위는 나의 넘치는 분노의 불꽃을 잠재우는 데 꽤 쓸모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토요일이었고, 정규수업은 이미 끝났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다음 주 농구 시험 대비를 핑계로 공을 던지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학생주임이 나타났다. 농구장에 있던 우리를 자기 앞으로 불러 세우더니 시끄럽게 떠드는 우리 때문에 아직 교실에 있는 2, 3학년들이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다며 몰아세웠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우리를 학생부실로 데려가 반성문을 한 장씩 적게 했다. 수업을 빼먹고 놀던 것도 아니고, 토요일 오후였는데 말이다. 그깟 농구공이 통통거리는 소리에도 공부를 하지 못할 정도면 자퇴하고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세상이 미쳤고, 나는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학생주임은 우리의 입장 따위는 들어볼 생각도 없어 보였다. 지금도 그때, 학생부실에서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설교를 듣는 내 모습이 뇌에 선명히 남아있다. 살면서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경험은, 음, 아직 없다. 아닌 것은 아닌 거라고 왜 말을 못 해. A4 용지에 연필심을 꾹꾹 누르며 분을 삭이다가 나도 모르게 다리를 꼬았다. 앵그리 틴에이저답게 턱은 반항적으로 옆으로 틀고, 오른쪽 허벅지로 왼쪽 허벅지 위를 꽉 눌렀다. 주위는 가라앉았지만 내 ‘중심’은 극도로 흥분했다. 인생 최고의 자위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온 나의 자위는 이제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자위도 자주 해야 익숙해지고 실력이 는다. 손가락을 직선으로 움직일지 곡선으로 움직일지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완벽하게 자신에게 빠져들어야 만족감이 온다. 아! 그리고 먼저 손을 뜨끈하게 만든 다음 시작하면 확실히 몸이 빨리 풀린다.

 

마돈나의 명곡 <Express Yourself>는 어린 시절, 혼자 눈을 감고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마다 듣던 의식용 음악이었다. 특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남자와의 잠자리로 고민 중일 때 이 노래를 들으면,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못을 새기듯 박힌다.

 

"버금이로는 절대 만족 못해. 베이비 너는 스스로 훨씬 더 잘 할 거잖아.

second best is never enough. you'll do much better baby on you own."  


글 / 윤수은 섹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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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자기계발우화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의 저자. 경향신문사 40기 출판국 기자로 출발, <레이디경향>, 에서 생활팀 에디터로 활약했다. <주부생활>, <마이웨딩>, <스포츠칸>, , <싱글즈>, <엘르>, <코메디닷컴> 등의 신문, 잡지에 솔직담백한 섹스칼럼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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