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입이 어른인가?

고금소총


‘개도 편지를 쓴다(狗作便紙)’와 ‘어느 입이 어른인가(何口之丈)’

이미 한글이 널리 보급된 때였지만 웬일인지 어우야담(於于野譚), 동야휘집(東野彙輯), 청구야담(青邱野談), 청구소총(青邱笑叢), 계서야댬(渓西野談), 아주잡록(鵝洲雑録, 지봉유설(芝峰類説) 등 조선조 때의 대부분의 육담(肉談)집은 한문으로 되어있다. 양반들끼리나 읽으려 했던가 알 수 없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금소총(古今笑叢)이었음은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그중 두 가지를 더 소개하는데, 이는 요즈음 나도는 우스갯거리 중 많은 이야기가 과거 우리네 조상들도 즐겼던 것이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가난한 선비 부부가 비는 부슬부슬 오고 어린 아들도 밖에 나가고 없는 데다 딱히 할 짓도 없게 되자 낮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아들이 대문을 들어서며 큰소리로 ‘아버지, 손님 오셨어요.’ 하고 외쳤다.

그러자 다급해진 선비 ‘지금은 편지를 쓰고 있으니 다 쓰고 곧 나간다고 일러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선비가 일을 다 마치고 사랑방으로 나와 시치미를 뚝 떼고 기다리던 손님과 얘기를 나누는데 때마침 마당 한구석에서 개들이 교미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개들의 그 짓을 바라본 아들이 소리를 질렀다.

‘어어, 개도 편지를 쓰네.’

 

경상도 어느 양반댁의 외동아들이 장가들 때가 되자 이웃 마을의 세 처녀가 서로 다퉈 시집을 오고자 했다. 그러나 가문이나 바느질 솜씨 용모 예절 등이 한결같아 며느릿감 가려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이 양반은 세 처녀를 불러 놓고 문제를 냈다.

‘여자는 남자와 달라 입이 둘이로다. 위에 있는 입 말고 아래에 입이 하나 더 있도다. 내가 묻노니 윗입과 아랫입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른인가? 사려 깊게 답을 하렷다.’ 첫 번째 처녀가 쾌활하게 먼저 대답을 한다.

‘예, 윗입이 더 어른입니다. 아랫입은 아직 이가 나지 않았는데, 윗입은 이가 모두 났기 때문에 더 어른입니다.’ 그러자 두 번째 처녀가,

‘아닙니다. 아랫입이 더 어른입니다. 윗입은 지금껏 수염이 나지 않았는데 아랫입은 수염이 아주 무성하게 나 있으니 더 어른입니다.’

세 번째 처녀는 다소곳이 앉아서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양반이 그 처녀에게 넌지시 눈길을 주며, ‘너는 어느 쪽이냐?’ 하고 물으니 세 번째 처녀가 이르기를,

‘다 틀리진 않아도 맞는 답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소저의 생각으론 윗입이 더 어른입니다. 왜냐하면 아랫입은 평생 아기처럼 물려주는 젖만 빨아 먹는데 윗입은 스스로 밥도 먹고 과일도 먹고 못 먹는 게 없으니 어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다. 네 말이 옳다. 음양의 이치를 제대로 아는걸 보니 한 지아비의 아내 노릇을 충분히 할 자격이 있도다’ 하고 무릎을 쳤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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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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