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놋방에서 자도 고자옆에 눕는다'

주막. 혜원 신윤복 그림


‘복 없는 년은 봉놋방에 가서 자도 고자 옆에 눕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봉놋방은 주막(酒幕)의 객실로 여러 나그네가 한데 모여 자는 방이었다. 주막은 ‘술막’ 또는 ‘숫막’이라고도 불렀는데, 주로 길가에 세워져 밥과 술을 팔거나, 돈을 받고 나그네를 묵게 하는 집이었다. 구조는 색시를 곁붙여 술을 파는 작은 술 방 서너 개와 장돌림이나 길손을 받는 봉놋방이 한둘 있는 게 보통이었다.

 

‘복 없는 년은 봉놋방에 가서 자도 고자 옆에 눕는다’란 물론 ‘운수가 나쁘면 하는 일마다 참으로 안 된다’는 뜻일 터인데,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당시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그렇게나 내외법이 엄격하던 시대에 남녀를 혼숙시켰고, 이곳에서 요즈음 개념으로 성추행이 더러 일어났으며, 대부분 이런 성범죄는 묵인되었고, 이를 은근히 기다리는 여자도 있었다는 얘기다.

 

진실은 워낙 여자 손님이 없다보니 이들을 위한 방을 따로 준비할 수 없었고, 어쩌다 여인네가 들면 대부분 방 한쪽 구석에서 앉은 채로 날밤을 새우곤 했겠지만 때에 따라 옆에 누워 자기도 했을 것이다.

 

19세기 말에 주막시설을 이용해 본 영국 여성인 이사벨라 비숍은 ‘좁은 방에 몇 명이 들어 자는데 벌레가 들끓고, 방은 화상(火傷)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다’라고 썼다. 벌레란 아마 이를 의미했을 것이다. ‘봉놋방’은 대부분 구들만 뜨듯했지 이부자리 없이 목침 하나씩만 주었다고 한다.

 

고려 때는 엽전이 많이 통용되어 주막이 꽤 있었으나 조선조 들어서면서부터 정책적으로 화폐를 억제했기 때문에 많이 줄었다. 그러다가 상평통보(常平通寶)가 통용되기 시작한 효종 때부터 다시 늘기 시작한다. 하멜은 그의 표류기에서 ‘여행자들이 쌀을 갖고 다니다가 민가에 찾아가 자기가 먹을 만큼 내어 놓으면 집주인이 밥을 지어 반찬과 함께 차려주었다’고 썼다.

  • Blank 2f561b02a49376e3679acd5975e3790abdff09ecbadfa1e1858c7ba26e3ffcef

    profile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Thumb 1593591084.1134956
페이스북에서 속삭을 만나보세요
속삭
Original 1628810363.5313268
Original 1628810343.8052394